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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홍상수를 만나다

#、보고 쓰다

by 꽃띠 2013. 9. 1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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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때부터 보려고 별렀는데 독립영화가 참 보기 어려운(?) 영화 인지라

하루 한 번 상영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봐야지 봐야지 하다 놓쳐버렸다.

그 뒤 다운 받아서 가지고 있다가 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없는게 아닌가! 회사 컴에도, 집에도, USB에도 어디도 없어서

내가 잘못 생각한건가 .. 하고 홀린듯 했는데 잊고 있다가 오늘, 운명처럼 영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도 명쾌하게 떠오르는 이유가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 제목 때문에.

 

 

 

 

 

 

 

대학에서 연극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그녀. 해원. 그녀는 학교 강사이자 감독인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헤어질 듯 헤어질 듯 헤어지지 못하는 그와 그녀.

엄마가 캐나다로 떠나버린 어느 날, 그와 다시 만난다. 

 

 

거짓말 하기 싫어하는 그녀이지만 그와의 관계는 거짓말 투성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는 온전히 기대기엔 너무도 찌질하다.

눈치보고, 변명하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남자.

그런 남자를 해원은 사랑하고 있다.

 

 

 

 

 

 

 

해원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웅장함도, 치밀함도, 자극적인 맛도 하나 없는 홍상수 표 영화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뭐랄까.  이영화, 조미료가 없다. 그렇다고 '건강한 웰빙'음식 이라고 참아주며 먹는 맛도 아니다.

괜찮다. 이 영화, 참 괜찮다.

 

 

 

 

 

특별할 것 없는 에피소드에 눈물을 자극하거나 분노를 자극하는, 엄청난 명대사도 없다.

백반같은 영화. 어떻게 이렇게 평범한 장면과 대사에 모든걸 다 담아냈을까.

 

사회 통념에 반하는 연애는 힘들다.

남들 눈치 봐야하고, 서로의 상처도 신경 써야 한다.

찌질한 남자 이선균. 그는 모든 것(아내와 아기)을 가졌지만 잠시 헤어진 사이 해원이 다른 사람과 만났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괴로워 하던 그에게 다가운 등산중인 아저씨.

"힘들다"는 선균에게 말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잖아"

 

 

가치. 그래, 가치.

가치 있는 사랑이 얼마나 될까.

내가 이렇게 극도로 화가나는데, 펑펑 눈물을 쏟고 내 시간을 몽땅 그 사람 생각에 쏟고..

사랑은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 내 감정, 내 시간, 내 눈물 .. 때론 내 양심 까지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런 것을 모두 투자할 만큼의 사람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사람을 사랑할 수록 새 사랑에 솔깃해 진다.

외로워서 그를 떠날 수 없으면서도, 그 옆에서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

내 사랑은 온전히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에게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알면서도 새로 다가오는 호감을 막지 않는다.

사랑 할 수록 외로워 지는 법이라면,

사랑하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는 사람과 평생을 지내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못된 생각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전에 일일 드라마에서 먼저 얼굴을 익힌 배우 정은채.

나는 그녀가 그렇게 이쁘지도, 매력있지도 않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일반인에 비해 매우 이쁜 얼굴이지만)

평범한 몸매에 이쁜편인 얼굴. '해원'에 이보다 더 맞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누구의 딸도 아닌.    의무도, 책임도, 해야할 일도 훌훌 버릴 수 있다면 더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을텐데.

오롯이 내가 된 나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의 딸    이라는 것은 분명 나를 옥죄고 있다.

누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쥐고있는 역할. 그 책임감에 부흥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인생에서 오롯이 솔직한 나는 과연 얼마나 숨쉬고 살고 있을까.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는 해원에게 말한다.

"너도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아"

해원은 답한다.

"지금도 그러고 있어"

 

 

 

 

영화는 참 뜬금없이 끝난다. 홍상수 감독에게 어떤 해답을 바라던 나를 놀리듯.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이 영화는 영화같지 않다. 그냥 생활이다.

90여분 안에 기승전결이 다 들어 있는 것은 말그대로 영화다.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걸 우린 잘 알고 있다.

어쩐지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도, 운명일 것 같은 인연도 허무하게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사실,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이 매일 해가뜨고 나는 숨쉬고, 어제의 문제는 고스란히 오늘도 눈을 뜨고 있다.

모든 일이 짜 맞춰 진듯 굴러가지 않는다.

 

내 맘 하나도 내 스스로 잘 모르는게 인생사 아니던가.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나도 모르게 한마디 뱉어 버렸다.

 

 

 

 

아,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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