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그 자체의 기쁨보다 소장의 기쁨을 더 크게 느끼는 내가
처음 헌 책방에 책을 팔고 돌아왔다.
책장안에 꾸역꾸역 끼어있다 못해 바닥까지 널부러진 책들 위로 뽀얀 먼지가 두툼하게 쌓인 모습을 보며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책을 팔자.
책 선물은 함부로 하지 못하겠다.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책이 있고, 책 편식이 심한 내 입장에서 내가 선호하지 않는 종류의 책은
참 난감한 선물이기에, 남도 그럴 것이라 여긴다.
가벼운 만화책이나 에세이 혹은 요리책 정도만 선물한다. 문학책은 특히나 선물하기가 어렵다.
나는 책을 정말 깔끔하게 읽는다.
접거나 낙서하는 일은 '절대로'없다. 최근 읽고 있는 '조선왕조 500년' 책에 한두자 '뜻풀이'를 해놓은 것과 큰 맘 먹고 몇번(내 기억엔 두세번쯤) 좋은 글귀에 밑줄을 그은것이 내 몇십년 독서 인생의 전부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도 여러권 가지고 있는데 종이가 노래졌을지언정 낙서하나 없다.
헌책방에서 '최상급'을 자부한다.
고르고 골라 읽지 않는 책 -선물 받아 읽지 않은 책과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골라내 작은 상자에 담았다.
요리책 두어권과 '최신상' 만화책 한 권, 영어로 읽는 문학책 한 권, 사진책 한 권, 일본어 공부책 두 권, 자기개발서 한 권 등이 담겼다.
문학책은 어쩐지 더더욱 담기가 힘들었다.
다시 또 그 상자를 구석에 두고 쳐다보기를 두달여 째. 큰맘먹고 헌책방으로 갔다.
책을 파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꼼꼼했다.
본인 확인을 하고, 책을 매입하는 조건을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 들은 후 내 책의 상태를 꼼꼼히 검사 받았다.
찢어진 곳은 있는지, 5장 이상 낙서가 되어 있는지, 기증받은 도장이 찍혀 있는지 등등을 살펴 책의 등급을 '낙찰'받은 후 책 값의 몇프로를 받는다고 했다.
책 상자를 다소곳이 들고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사람이 파는 책을 슬쩍 보니 700원, 1000원 따위의 금액이 매겨졌다.
아, 헌책이란 '몇장의 폐지' 가격밖에 되지 않는구나. 씁쓸했다.
책을 그냥 폐지함에 버릴 수 없어 팔기로 한 것일 뿐 애초부터 가격은 별 상관없었다. 큰 금액을 쥘 것이라는 기대는 눈꼽만치도 없었지만
몇백원에 팔려가는 책을 보니 조금 씁쓸하기는 했다.
내 책은 '최상급'의 등급을 맞고 제법 '고가' 판정을 받았다.
밑줄하나, 구김하나 없는 책들이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몇 백원'의 가치를 넘어 '최상급' 판정을 받자 괜시리 뿌듯했다.
매입이 불가능했던 책 몇권을 도로 들고 8권을 팔아 손에 쥔 2만1000원을 들고 책방을 나섰다.
그 돈으로 문구점에 가 색연필 몇자루와 수첩을 사고 나머지는 동생에게 주었다.
책을 파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기도 했다. 모르겠다. 왜인지는. 그냥 나도모르게 헌책방 입구에서 잠깐을 쭈뼛댔다.
하지만, 나오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폐지가 되지않아 다행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한 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