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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권태로운 연인들에게 추천

#、보고 쓰다

by 꽃띠 2013. 3.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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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애의 조건을 묻다

 

'연애의 조건'은 무엇일까. 두근거림? 새로움? 짜릿함?
짚신도 짝이 있다지만 세상 모두가 커플이 될 수 없는데는 이유가 있다. 사랑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
사랑을 시작하기 전, 내 마음을 준만큼 그에게도 돌려 받을 수 있는지, 나의 두근거림에 대한 대답을 그에게 들을 수 있을지 미리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짝사랑은 상대의 허락 없이 가능하지만 연애에는 분명 조건이 필요하다.
한 방향으로 뻗은 사랑은 결핍이다. 전기가 흐르듯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할 때 비로소 하나의 사랑, 연애가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결핍'의 대표격인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뻗은 곳에 '청춘 놀이'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대학 졸업식날 만난 둘은 우연치 않게 하룻밤을 보내려다 어긋난 일을 계기로 친구가 됐다.
여자는 오래전부터 남자를 짝사랑했지만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편한 친구일 뿐이다.
부유한 집안에 훈훈한 외모까지 갖춘 덕에 흥청망청 살아가는 남자와 작가라는 꿈을 향해 버거운 현실과 싸워가며 열심히 달려가는 여자는 오랜시간 위태위태한 우정을 이어간다.

 

 

 

 

 

 

 

2. 스무번간 이어진 7월 15일


영화를 이어가는 중심 코드는 두가지다. 우정으로 포장된 사랑 그리고 7월 15일.
졸업식이 있던 1988년 7월 15일 새벽을 함께한 이후 두 사람의 연결고리와도 같은 스무번의 7월 15일을 남자와 여자는 따로 또 같이 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가 귓가에 맴돌았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엉켜버린 꿈을 안고 방황할 때, 쉽지 않은 인생 탓에 괴로울 때 서로를 의지하는 둘은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딱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향해 서있다.
영화 '원데이'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긴 시간의 포인트를 '하루'에 맞췄다는 것이 차별화라면 차별화다. 자극적인 내용 (온갖 선정성이 넘쳐나는 스크린에서 남자 주인공의 바람끼는 애교에 가깝다.)도 없다. 이것은 영화의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와 비슷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밍밍한 느낌이다.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 믹스를 하나 넣고 물이 찰랑찰랑 할 정도로 따라 마시는 커피만큼 심심한 맛이다.
소재 탓도 있겠지만 애절함이나 애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잔잔해도 너~무 잔잔하게 만들었다.
'파리, 런던 등 50여곳의 로케이션으로 탄생한 그림 같은 영상'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마땅한 볼거리도 없다. 유럽의 도시를 누빈 영화는 고집스럽게 인물 중심으로 촬영을 이어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여주인공 앤 해서웨이의 매력은 영화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다. 시대별로 변하는 앤 해서웨이의 스타일은 그녀의 팬이라면 단지 여주인공 하나만 보는 재미로도 영화를 관람할 충분한 이유가 될 정도다.
영화를 보면서 2004년 개봉한 영화 '이프온니'를 떠올렸다. 묽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와 가랑비에 마음이 젖는 것 같은 느낌이 닮았다. 무엇보다 함께있는 지금의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똑같다.

 

 

 

 

 

 

 

 


3. '지금의 사랑'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는 커플들은 한 마음일 것이다. 스크린 속 커플들의 과거에서 본인들의 과거를, 답답한 현재에서 지금의 방황을, 미리 펼쳐진 미래에서 아찔한 깨달음을 얻는다.
사랑이 사랑에게 상처주는 모든 것은 하나의 이유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소중함을 잊는 어리석음이 후회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원데이'는 남성들이 좋아 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지금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은 특히나 지루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편안함이 주는 권태에 빠진 연인들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될만한 영화다.
'원데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어줄 것 같은 사람일수록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우쳐 준다. 지나친 극적요소가 없는 탓에 심심하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큰 현실감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3. '날개' 못편 원데이

 

원데이 개봉당시 극장가는 헐리웃 판타지 '호빗'이 점령한 상태였다. 화려한 명성과 웅장함으로 무장한 영화가 상영관을 독식해 어느 영화도 발디디기 쉽지 않았다. 초라한 원데이의 흥행 성적표는 이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하루 한번꼴로 상영한 탓에 작정하고 간 것이 아니라면 운이 좋아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작정하고 찾아가서 봤다면 영화 소감에 야박할 수밖에 없다. 흥행 부진을 오로지 영화 탓으로 돌리기엔 다소 억울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영화 '원데이'는 상영관의 천대와 무관심 속에 더 조용히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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