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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권여선/소설집

#、읽고 쓰다

by 꽃띠 2017. 8. 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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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 소설집 

 

나도 모르게 응, 안녕- 대답할뻔 했다. 낯설고도 친숙한 제목.

책을 덮고나니 안부를 묻는 안녕인지, 작별을 고하는 안녕인지 궁금해졌다.

이정도 주정뱅이들은, 괜찮잖아?

 

 

 

작가 권여선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에서였다.

김영하 작가가 읽어준 단편은 소설집 속 '이모'라는 글이었는데 김영하 작가가 들려주는 글은 왜 다 그렇게 전부

말캉하고 뜨듯한지. '이모'의 느낌도 김영하 작가의 목소리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띈 책을 집어들고 책꽂이에 두었다가

충주로 가는 기차에서 책을 펼치고 나서, 나는 단숨에 단편 몇편을 읽어 내려갔다.

글은 눅눅했고 뜨듯했다. 어쩌면 충주로 향하는 내 마음이 그래서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일곱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중 한명 이상은 꼭 술을 마신다.

책 제목만 보고 기대(?)했던 것 만큼 떡 벌어진 술상이 차려진 것도 아니고 고주망태가 된 술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술은 그저 밥상 한 귀퉁이, 이야기 한 모퉁이마다 조용하고 다소곳 하게 놓여있다.

 

그래서 일까 단편 모두가 술술 넘어간다. 쉽게 읽히는데 가볍지 않다.

, 술 한잔 할까-싶은 그런 기분.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168쪽)

 

무서운 타자이자 이방인, 작가가  '역광'의 등장인물 입을 빌려 나지막히 던진 이 말을 한동안 곱씹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 요지부동의 이물질..

과거의 나는, 나의 과거는 분명 나인데 왜 이렇게도 이질감이 드는지.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도 그러려나.

 

어쩌면 '나의 과거'를 마주하러 가는 길이라서 더 이 문장이 날카롭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오탈자, 오탈자 ….

오탈자가 아니라면 좋으련만. 얼룩이 아니라면 좋으련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과거가 되어버린 것과 마주하러 가는

기차에서 만난 이 문장이 아팠다.

내가 후회되는 것이 과거의 시작점의 나인지 마무리를 지은 나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명쾌해 지겠지. 어쩌면 충주로 향하던 나도, 미래의 나에겐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176쪽)

 

일곱편의 단편중, 유일하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되돌려 다시 읽은 '실내화 한켤레'

타인의 불행을 관조하는 시선이 너무 덤덤해서 방금 내 눈앞을 스쳐간 것이 저 사람의 불행인줄 꿈에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되돌아가 불행이 스치는 그 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정독했다.

때론 인간의 덤덤함이 지독하게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슬프다.

 

 

 

 

작가를 따라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권여선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첫만남이 좋았다. 

한동안 단편에 빠져살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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