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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을 부끄럽게한 60대 택시아저씨

#、살다

by 꽃띠 2011. 8. 1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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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회식끝나고 택시를 타면 12시를 넘기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얼마전에 신탄진으로 이사를 하면서 택시탈 거리가 3배는 늘어났지요.
택시비도 택시비지만 사실 여자혼자 그 시간에 택시를 타려면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드는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불쾌한 농담을 하시는 분을 만난뒤론 더더욱 싫어졌지요.

그뒤로는 탈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만 하고는 내릴때까지 통화를 합니다.

운전하는 막내동생 입니다. 글의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입니다.

며칠 전에는 서대전역 근처에서 회식을 하고 대전역까지 택시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간은 11시가 살짝 넘은시간이었죠.
아무생각없이 택시를 잡아 타고 습관대로 (별 생각없이) "안녕하세요. 대전역 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보통이라면 "네" 라고 하시거나 아무말씀 안하시는분이 대부분인데
기사님께서 "네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시더군요. 고개를 꾸벅 까지 하시면서 ..

습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친절한 인사였습니다.
게다가 귀에 확 꽂히는 듣기좋은 목소리.
제가 다시한번 진심을 담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아저씨는 웃으시며 "목소리가 참 좋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칭찬도 받고, 인사도 나누고 기분이 좋아 평소와 다르게 아저씨와 대화를 하게되었습니다.

아저씨는 택시한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며 말문을 여셨습니다.
속으로 선생님이나 연극배우를 하던분이 아닐까 생각하던 차였기에 (그만큼 듣기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셨어요)  전에 무슨일을 하셨는지 묻자 광고 대행업을 오래했다고 하시더군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는 광고를 대전에서 처음 시도했다는 말씀과 은행동 인쇄골목에서 직원을 두고 회사를 운영했다는 말씀, 컴퓨터가 일반화되며 사업이 맘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가벼운 마음으로 "네, 네" 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도 지금은 택시를 하고 있지만 택시란 직업이 참 좋지 않아요. 아마 택시하는 사람들중에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꺼에요. 잠도 못자고 일해봤자 돈도안돼고... 이거 참 힘든 직업이에요. 모든 직업이 힘들다지만 이거야 말로 참 힘든일이죠. 회사택시든 개인택시든 마찬가지에요"

조곤조곤 천천히 말씀하시던 아저씨께서 갑자기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광고라는게 또 아무나 하는일이 아니에요. 시대가 바뀌어서 컴퓨터에 밀려 내가 일을 그만뒀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택시일 접고 다시 광고일을요."


저는 그제서야 자세히 기사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볼수 있는것은 뒷모습과 백미러에 살짝살짝 비치는 눈이 전부였지만 딱 봐도 할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 그 일을 다시 하시려는 건데요?"

"저는 그일을 참 좋아했습니다. 의욕적으로 했어요.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비록 컴퓨터 시대가 되고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그 일이 큰 돈이되지는 못하고 찾는 사람도 많이 없어졌지만 70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을 하자 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뭔가 머리를 쿵 하고 때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이 할아버지는 젊음을 바쳤던 그 일로 다시 돌아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그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없을지언정 안목과 감각만은 여전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미 60대 후반의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자신이 젊음을 바쳤던 그 일에대한 애정과 열정이 할아버지의 편안한 목소리를 타고 전해졌습니다.

오래전부터 했었던일이라고는 하나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20대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건 분명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했던일에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추억으로 두고 그리워하는게 또 다시 뛰어드는 것보다 열배는 쉽기 때문이지요.

아쉽게도 멀지않은 거리였기에 더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다시 그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말씀을 할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있는 듯 했습니다.

그보다 훨씬 젊은 (젊다못해 어린) 나는 60대 후반의 할아버지만큼 신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분에 비하니 저는 열정없이 하루하루를 소비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꿈이 없었던것은 아닌데 저도 모르게 어느순간 부터 출퇴근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열정은 차가워졌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보다 꿈없는 삶을 살고 있다니... 참 부끄럽습니다.


제가 다시 그 택시를 탈일은 앞으로도 없을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다시 광고일을 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할아버지의 꿈 반드시 이루시기를. 그리고 젊은시절보다 훨씬 멋진 광고인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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