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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첫사랑의 계절

#、보고 쓰다

by 꽃띠 2021. 1.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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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1998,한국) 한석규/심은하 주연


집콕이 길어지면서 옛날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봤던 내용엔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라 두세번 같은 영화를 보는게 나한테 흔한일은 아닌데

요즘은 왠지 본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나면 옛 영화를 뒤적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왜 이것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 이 또한 오만이다, 오만이야.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누군가는 클래식일테고, 누군가는 건축학개론일테지만 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내가 어릴 때 개봉한 영화고, 한석규나 심은하 배우의 팬도 아니고,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개봉이후 한참 뒤이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특별히 큰 감동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

같은 맥락으로 '첫사랑의 아이콘'이 누군가에게 손예진이고 누군가에게 수지라면, 나는 한석규다.

학석규 배우의 필모를 줄줄외는 팬도 아닌데 그냥 그렇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석규의 미소와 눈빛'이겠지?

내 안의 첫사랑 아이콘이 이분이라는 것은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며 깨달았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을 찾고 있구나-라고.

 

 

 

 

1. 한정된 시간과 무한한 감정

 

조용한 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한석규)의 일상에 불쑥 나타난 다림(심은하).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에 불법주정차 차량 사진을 현상하러 오는 주차단속요원이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라고 물을 만큼 당돌한 다림과 모든 상황을 '허허' 웃어 넘기는 정원은 '썸' 타는중.

시한부 선고를 받고 덤덤히 이별을 준비하던 정원의 일상은 이 '썸'으로 흔들리는 중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 진부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설정, 시한부.

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닐 수 있었던것은 덤덤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 주인공 덕분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으랴.

하지만 정인은 오래전 엄마의 죽음 이후, 늘 죽음이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것을 인식하고 살았다고 한다.

삶에 어떤 욕심도 없어 보이지만 무기력하지 않은 정인역을 한석규 배우 말고 어떤 배우가 표현할 수 있었을까.

 

새침한 다림을 그저 껄껄 웃으며 바라봐 주는 정인.

꿀 뚝뚝 떨어지는 멜로보다 나는 이런 포근한 멜로가 좋더라.

 

 

 

 

 

2. 욕심의 무게

 

나는 늘 '쿨'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분명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나를 돌아보면 내가 쿨할 수 있었던 상황은 모두 감정이 없어서 였다.

욕심이 없고 미련이 없는건 쿨해 보이는 거지.

 

욕심이 생기면 감정은 무거워 진다.

훌훌 털 수 있었던 것들도 진득하게 달라 붙는다.

 

 

정인과 저녁 약속을 잡은날 오지 않았다가 어느날 또 홀연히 나타나서

"그냥 오기 싫어서 안왔어요"라던 다인이 사라진 정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화를내는 것이나

다인을 생각하며 손 편지를 쓰고도 차마 부치지 못한 정인의 마음이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 영화가 진부하지 않은 것은

죽음이 한없이 가벼운 것 같은 전반부도 복잡한 감정에 점점 무게감이 생기는 후반부도

그저 덤덤하게 흘러 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무리해서 주인공들의 감정을 기승전결로 나누지 않는다.

억지로 보는이를 울리려고 하는 욕심이나 살고싶어 발버둥 치는 감정의 바닥을 보이지도 않는다.

덤덤하고 단단하게 흘러갈 뿐이다.

 

 

다인은 정인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래왔듯, 계속 발랄하게 살아갔을까, 정인이 홀연히 사라진 다음에도.

 

그저 따뜻하고 포근한 눈빛, 당신은 나의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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