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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이여!

#、보고 쓰다

by 꽃띠 2018. 12. 2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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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신이 산다길래, 나는 제법 친근하고 부드러운 '인간적인' 신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이렇게 철없고 못믿을 신이라니.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게 문제지만)

오 마이 갓.

 

□ 줄거리 :

 

브뤼셀의 방 세개짜리 아파트. 입구도 출구도 없는 그 곳에 '신'이 산다.

신에게는 부인도 있고 모두가 아는 아들도 있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딸이 있다.

아들은 12사도에게 기적을 보이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신의 부인은 여신이지만 괴팍한 신에게 눌려 말 한마디 못하고 살고 있으며

어린 딸은 그런 신에게 불만 투성이다.

신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가족들에게 소리 지르기, 스포츠 채널 보기 그리고 서재에 틀어박혀

인간들 괴롭히기다.

신은 아들, 딸처럼 기적을 일으킬 능력은 없지만 인간사를 모두 관장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

그의 '클릭' 몇번으로 인간들은 죽고 산다.

어느날, 심술궂은 신에게 반항하기로 결심한 딸은 신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인간들에게 각자의 수명을 전송하고

가출해버린다.

 

"인간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 나에게 복종하는 거라고!!!!"

 

신의 컴퓨터를 망가트리고 인간세계로 도망간 딸은 오빠의 조언에 따라 8사도를 찾아 나서고

화가 단단히 난 신도 딸을 잡으러 인간세계로 나선다.

 

 

 

 

□ 이토록 유쾌한 '모독' :

 

아무리 '중2병' 마인드로 똘똘 뭉쳤다 하더라도 (중2땐 무서울게 없다) 절대 가볍게 건들지 말아야할 주제가 셋 있다.

정치, 종교   그리고 일베(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개인적으로 정치나 일베는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바닥이 어디인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양지로 끌어 올려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종교는 정말 '답이없다' 비꼬는게 아니라 정말 사전적인 의미로 정답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니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본다.

 

영화속 신은 난폭하고 게으르며 무능하다.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망가진 컴퓨터를 고치지 조차 못한다.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을 괴롭히는게 삶의 낙이고 아내에게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딸에게는 폭력까지 휘두르는

그에게 전지 전능한 능력이나 절대적인 사랑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으로 불리지만 인간의 악을 죄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사나이.

그런 그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오 마이 갓'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웃음 포인트다.

신을 찾는 신의 입을 통해 "신은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영화속에서 신은 한 종교의 신으로 특정되지는 않으나 그의 아들은 예수다.

아들은 아버지에 반발해 12사도를 모은뒤 십자가에 못박혔고,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 동생 에아의 탈출을 돕는다.

에아는 오빠의 12사도에 6사도를 더 모아 18사도와 신약성서를 쓰면 기적이 일어날거라고 믿는다.

 

사도를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에 오빠는 "네 맘 가는대로"라고 대답한다.

착하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부자이거나 똑똑하거나 따위의 기준은 없다.

말그대로 '랜덤'이다.

 

 

 

 

□ 랜덤 6사도의 신약성서 :

 

그렇게 선택받은 6인은 인간세상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각자의 사연을 품고있다.

이들의 사연은 특별해 보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닥 특별할 것도 없다.

누구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살고 있으니까.

 

에아 때문에 (혹은 덕분에) 자신이 죽은 날짜를 알게된 그들은

누구는 평소처럼 살기로, 누구는 마음대로 살기로, 누구는 이제까지 전혀 다른 나로 살기로 결심한다.

에아는 그렇게 결심한 그들에게 다가가 이제까지의 삶을 묻고, 듣고 그리고 적는다.

 

 

 

 

앞서 말했지만 '이웃집에 다정한 신이 산다'는 이야기 정도로 짐작했던 나는

(나는 정말 말괄량이 딸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고 훈훈하게 해결해주는 아버지 신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영화가 진행될 수록 당황스러움을 넘어 '헐리웃 밖 영화'의 발랄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가

(이 영화는 벨기에 영화다)

나의 고리타분함을 반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오, 주여. 저의 무지함을 용서하옵소서.

 

 

 

 

그래, 인정한다. 신이 브뤼셀의 방 세칸짜리 아파트에 살고있다는 그 상상력부터 기발하다.

신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능력조차 없는 주제에 고집불통에 심술꾼이라는 그 상상력도 대범하다.

그런 상상력 앞에서 '죽음을 앞두고 여자아이로 살기로 결심한 남자아이'라든지

'자신이 죽는 날까지 저축해둔 돈을 모두 음탕한 곳에 쓰기로 결심한 남자' 정도는 독특한 축에도 끼지 못하는 마당에

성별, 상황을 뛰어넘은 사랑따위가 뭐 그리 놀랄일이겠냐만은

...냐 만은...

 

 

 

..고..고릴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

..아..아내보다 사랑한다는 그 고백은 뭔데 ...?

 

 

 

 

 

 

□ 믿음 소망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세상을 본인 손으로 만들었지만 괴롭힐줄만 알았지 사랑할줄 몰랐던 신은 자신이 창조한 '혹독한' 세상의 맛을

아주 톡톡히 본다.

자업자득이지 뭐.

이런 발칙한 상상이 제법 유쾌했다면, 하느님은 불쾌해 하실까.

 

에아가 사람들의 수명을 메시지로 보낸다는 전개도

자신의 수명을 알고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내는 인간들의 모습도

모두에게 각자의 음악이 흐른다는 설정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괴짜신이 엉망으로 만든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런면만 보면 인간이 신보다 훨씬 성숙하고 너그러워 보인다.

몇개의 사랑은 .. 사실 좀 .. 음.. 좀 뭐 음.. 당황스러운건 사실이지만..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때로 '이번 생은 글렀어'라는 한탄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 심술궂은 신 때문이라면,

꼬일대로 꼬인 인생과 별개로 어딘가에서 나만의 사랑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오고있다면

'에라이' 한번 내뱉고 툭툭 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재밌다. 유쾌하다 이런 영화.

 

 

하지만,

나의 하느님은 제발 괴짜가 아니기를.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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