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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쓰다

by 꽃띠 2018. 12.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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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히 이 영화에대해, 이 시대에대해, 이 시대 개인의 고통에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았으니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나는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어느날 내가 어떤 것에 공포를 느끼는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귀신 그리고 '히틀러'였다.

히틀러 시대 영상만 보면 심장이 뛰고 두렵다. 전생에 유대인이 었나? 싶은 마음도 있는데

아마 어릴때 읽은 '안네의 일기' 영향이라는게 더 설득력 있겠지.

 

전체주의, 국가주의, 인종청소 이 모든것에 공포를 느끼지만 콕 집어 히틀러, 나는 그의 광기가 너무너무 무섭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작품성에대해서는 일찍이 들어왔지만 내가 이 영화를 쉽게 보지 못했던 것은

1. 내가 너무나 무서워하는 주제이며 2. 보나마나 눈물이 터질것 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 그리고 가족. 이 영화는 내가 너무너무너무 약한 주제의 결집체다.

 

하지만 옛날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영화는 '만나지 못한 이상형'같은 존재였다.

늘 보고싶었지만 볼 수 없다가 어느날 용기를 냈다.

 

 

□ 줄거리 :

순수하고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시골총각 '귀도'는 로마에서 만난 여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진심어린 구애끝에 약혼자가 있는 그녀를 쟁취하고 귀도를 똑 닮은 아들 '조수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한편 나치의 '유대인 차별'은 점점 노골화 되고  조수에의 다섯살 생일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귀도와

조수에는 수용소행 기차를 타게 된다.

이 상황을 알리없는 아들이 두려워 하지 않도록 귀도는 '생일 기념 여행'이라며 조수에를 달래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도라는 스스로 기차에 올라 함께 수용소로 간다.

잔인한 수용소 생활이 계속되지만 귀도는 '1000점을 먼저 따는 우승자에게 탱크를 주는 게임'이라고 말하며

아들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조수에는 수용소 생활을 '숨바꼭질 게임' 정도로 이해하고

일할 능력이 없는 다른 아이들이 가스실로 끌려갈 때에도 꽁꽁 숨어있었던 덕분에 죽음을 피한다.

 

도라와 귀도는 서로를 그리워 하며 고된 수용소 생활을 견딘다.

 

그러던 어느날, '전쟁이 끝났다'는 소문이 돌고 증거를 없애려는 독일군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마지막 60점이 남았다. 이번에만 잘 숨어 있으면 1등"이라며 조수에를 숨긴채 귀도는 도라를 구하러 간다.

 

 

 

 

 

 

□ 잔혹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개인들의 이야기 :

 

잔인하다. 잔혹하다. 그 어떤 단어를 들이대도 그 이상 끔찍하다.

히틀러 아니 나치에 동조한 그들 전부는 인간일리 없다. 악마다.

 

유대인 학살이 노골화 되기 전, 도라의 약혼발표 파티에서 누군가가 이런말을 한다.

 

"정부가 장애인 1명에게 쓰는 돈은 **달러이며 전체 장애인 수가 **명이라고 할때 장애인을 모두 없애면

국가가 절약하게 되는 돈은 얼마인가. 베를린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푼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이런 내용)

 

이 말도안되게 끔찍한 문제를 두고 이어지는 말이 더 가관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다니, 독일인은 정말 위대한 민족이에요!"

 

 

소름.

 

열등한 존재를 멋대로 규정하고, 그것들을 모두 없애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던 시대. 아니 그런 사람들.

 

영화는 그 잔인한 시대를 몇마디의 대사로, 몇컷의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그치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시대의 그늘보다 훨씬 세밀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깊은 어둠에 숨이 턱턱 막히고 소름이 돋는다.

시대를 살아가는 꿋꿋한 개인.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짓밟혀버린 행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무너졌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귀도가 "너무 인기있어 표를 겨우 구했다"고 말한 수용소행 기차에는 유대인이 좌석도없이 빽빽하게 서있다.

아이도 노인도 그렇게 선 채로 '실려간다'

게임을 위한 캠핑이라고 말하는 수용소 생활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오늘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을 했는지' 유쾌하게 설명하는 귀도 뒤로 파리하게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겹친다.

닭장처럼 더럽고 답답한 수용소에서 웃고있는 것은 오직 귀도 뿐이다.

아들이 공포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위해 웃지만 그 자신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두렵겠는가.

그 웃음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 배우이자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

 

귀도역의 이 배우, 어디서 봤더라- 했더니 '로마 위드 러브'에서 유명한것으로 유명한 사람을 연기한 배우였다!

(로마 위드 러브도 좋아하는 작품)

 

순수하고 유쾌한 시골총각 역할에 찰떡이다 했는데, 감독에 각본까지!

이 영화가 1999년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음악상, 외국어영화상, 제5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 에서 상을 휩쓸었다니 (62개 수상)

그는 한마디로 '인생은 아름다워'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본뒤 로베르토 베니니에 흥미가 생겨 검색을 좀 해보니 여주인공 리콜레타 브라스치와는

로베르토의 감독 데뷔작 '당신은 나를 귀찮게해(1983)'에서 인연을 맺어 부부까지 되었단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아름다워로 정점을 찍은뒤에는 특별히 호평받은 작품은 없는듯 한데

2002년 발표한 '피노키오'라는 작품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았단다. (이 영화가 궁금하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홀로코스트를 웃음 소재로 전락시켰다는 비난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원치않는 비극을 맞아야 했던 개인의 일생을 덤덤하게 그렸다고 본다.

홀로코스트는 분명 전 인류적인 비극이다.

그것이 갖는 무게감이 어찌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뀐다고 가벼워 지겠는가.

난 영화를 보며 오히려 그 무게감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그것은 역사속 '불특정 다수'의 불행이 아니라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그의 웃음은 비극속에 있었기에 더 아렸다. 크게 소리치는 만큼 아픈것은 아니니까. 

 

 

 

 

 

 

□ 이런 영화, 옳아요 ★★★★☆ :

 

그 시대를 견딘것은 소수의 위인도, 선택받은 사람도 아닌 나 일수도 우리 일수도 있었던 개인이다.

아무리 차가운 비극 속에서도 꽃은 피고 미소는 있었으며

누군가는 사랑도 했다.

 

 

제발, 다시는 이런 시대가 오지 않기를.

 

하지만 지금도 로힝야족은 '청소' 당하고 있다.

스크린속 이야기라면 좋으련만 어딘가에서 아주 조금 다른 형태로, 아니 어쩌면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있다.

우리가 아무리 괴로워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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