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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아멜리 노통브/소설

#、읽고 쓰다

by 꽃띠 2017. 7.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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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 아멜리 노통브

 

책 표지가 노랗게 변한 이 책은, 아마도 내가 20대 초반 즈음 아멜리 노통브 소설에 빠져 샀던 책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분명 다 읽고 꽂아 두었을 텐데 다시 읽은 책이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낯선것을 보니

아마 그 당시의 나는 (20대 초반의 나는) 이 '배고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었나 보다.

 

벨기에 출신의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저돌적이고, 당돌한 문체를 가졌다.

꽁꽁 숨기는 법은 있어도 빙빙 돌리는 법은 없다. 담백하고 도발적이며 신랄한 문체가 매력이다.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도, 아멜리 노통브와 같이 외교관의 자녀로 어린시절부터 일본,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며 자란다.

이때문에 출판사의 소개 대로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다.

소설과 자서전의 경계 그 어딘가.

 

주인공은 늘 무언가에 굶주려있다.

그 시작은 '설탕'이다. 설탕이 들어간 어떤 것-초콜릿, 쿠키와 같은 것들의 '달콤함'에 매료된 그녀는

'초월적 배고픔'으로 설탕을 탐닉한다.

하지만 고작 유치원생인 그녀에게 설탕이 마음껏 허용될리 없었다.

주변인(엄마)은 그녀를 설탕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럴 수록 그녀의 배고픔은 커져간다.

 

주인공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그녀의 성장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단것, 사랑, 인간, 아름다움, 독서... 이 것들의 형태는 주인공의 세상이 넓어짐에 따라 바뀌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바로 그녀 내면의 욕구. 포장하거나 고상 떨지 않는 날것의 본능.

 

저자는 배고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 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

이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마 저 문장이 될 것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한순간도 충만하지 못한채 괴로워한다.

꽉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그녀가 갈망하는 것들은 늘 그녀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간다.

저자가 말한대로 그녀의 배고픔은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추상적이지도, 허황되지도 않다.

다만 현실에 대한 갈망일지라도 잡을 수 없고 가둘 수 없다. 이 글이 내내 허기진 이유는 이것이다.

 

 

- 나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나섰다. 이를 위해서는 제일 먼저 사랑에 빠져야 했다. 오래가지 않아 내게 사랑이 찾아 왔고, 이 끔찍한 사건으로 당연히 내 배고픔은 배가되었다. (...) 이 사건이 황폐한 중국 땅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내가 번영과 평안의 나라에 있었다면, 어쩌면 반란의 지경까지 허기를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키스 장면을 전쟁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본문중)

 

가장 허기진 나라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것이 충만할 때, 우리는 아무것에도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한창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다른 것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흔한 표현대로 세상이 핑크빛일 때,

내 안에는 어떤 갈증도 없었다.

다만 오직 그 사람만을 향한 허기짐만 있었을 뿐이다. 그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받아도 받아도 허기진 애정.

분명 충분히 행복한데, 왜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허기진지 알 수 없다. 슬픈 아이러니.

 

내 근원적 배고픔을 생각해 보면 아마 달콤함이 아닌가 싶다.

관계의 달콤함에 늘 목말라 있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고보니 달콤함이란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인지 알겠더라.

늘 한결같으면 좋으련만, 달콤한 것들은 모두다 녹아내린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결국은 다- 녹아내려 버리니까.

 

 

어떠한 것을 향한 갈망을 '배고픔'이라는 말 만큼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아멜리 노통브의 도발적인 문체로 풀어낸 배고픔은, 그 극심한 욕망의 갈증 상태를 가식없이 드러낸다.

혀끝의 강렬한 자극에서 시작해 아름다움, 사랑, 지식의 탐닉까지 복잡해지고 심오해지는 배고픔은 주인공이 점차 성장해감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이동하는 거쳐를 따라 일본에서 중국을 거쳐 뉴욕, 라오스 등 의 시대상을 엿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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