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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청춘이 길을 묻는다

#、보고 쓰다

by 꽃띠 2018. 11. 2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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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주인공 혜원은 학창시절 답답하게만 느꼈던 시골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갔지만 졸업후 삭막한 현실에 치어

'허기진 마음'을 안고 어느날 문득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어린시절 친구 재하와 은숙을 만나고 도시에서와는 다른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 엄마만 빼고 모든것이 똑같은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농작물을 키우며 '배고팠던 생활'에 천천히 온기를 채워 넣는 혜원.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때문에 허전한지 본질은 덮어둔채 도망중이라는 것을 알지만

혜원은 허기진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다.

 

 

 

 

 

 

 

□ 김태리의 김태리를 위한 김태리에의한 영화 :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서 이렇게 찰떡같은 배우가 툭 떨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원작이 없는 영화였다면 '김태리 이미지를 보고 만든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겠을 정도.

보통 다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든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든 원작의 이미지가 머리에 먼저 남기 때문에

나중에 본 작품에서는 이질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김태리가 없었으면 만들기 힘들었겠다' 싶을만큼 혜원의 이미지와 김태리가 똑 맞아 떨어졌다.

 

김태리는 필모그래피에 비해 존재감이 큰 배우라고 생각한다.

아가씨도 그렇고 미스터 선샤인도 그렇고 도저히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

(미스터 션샤인은 이 영화 이후 작품이지만 난 이 영화를 더 늦게 봤으니까)

 

그 자체로 물론 참 대단하지만, 존재감이 큰 배우(신인일 수록 더더욱)의 발목을 잡는 한계가 있으니

대중에 존재감을 알린 그 작품이 곧 그 배우가 되는 것이다.

각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얻은 인기가 크면 클수록 그 틀(이미지)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든다.

 

해리포터는 괜히 막 다른데서도 마법쓸 것 같고 맥컬리 컬킨은 집에만 있어야 할것 같고 (그것도 혼자)

 

아가씨속 김태리의 존재감을 말해 무엇하겠나.

전생에서는 물론이요,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가씨를 망치러온 구원자 숙희일 것 같던 그녀.

나는 남루한 한복에 시커먼 얼굴이 김태리의 문신일줄 알았다.

그 촌스럽고 '때묻은 순수함'으로 밖에 정의될 수 없을줄 알았던 배우가

그때 그 아가씨보다 더 고급스럽게 보이고 (미스터 선샤인) 서울 생활에 파리해진 시골소녀(리틀포레스트) 같아 보일줄

나는 정말 몰랐다.

 

또 김태리의 혜원이 좋았던 한가지.

음식 정말 맛있게 먹는다.

 

음식 맛있게 먹는 배우로 거론되는 몇명이 있다. 먹방의 홍수 속에서 '와구와구' 복스럽게 먹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던

몇몇의 여배우들. 망가짐을 두려워 하지 않은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사실 나는 그(녀)들의 먹방이 거북했다.

입에 넣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하고, 식사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음~' 소리를 내는 것을 잊지 않으며

중간중간 몸서리까지 치는 그 모습이 마치 요리왕 비룡의 실사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입안에 들어온 맛있는 음식으로 세상 시름을 다 잊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감고 입에는 감탄사 손발은 몸서리의 장단을 맞춰 꿀꺽 꿀꺽 먹는 그 모습은 내게 너무 인위적인 '연기'였다.

 

 

 

 

그러나 이 배우의 식사는 어찌나 담백한지, 감탄사 하나 없이 먹는데 내 입에는 침이 고인다.

밥이면 밥, 떡이면 떡 하물며 곶감까지 ... 아니 내가 남이 곶감먹는 모습에 침을 삼킬 줄이야.

 

저렇게 잘 먹는데 살은 왜 안쪄? 싶을 만큼 참 옹골차게 잘 먹는다.

다른 여배우의 먹방이 광고료 받은 파워 블로거의 반응이라면

김태리의 먹방은 손맛 좋은 엄마가 한 상 차려준 집밥을 먹는 느낌.

 

 

 

 

 

배우 얘기가 나온김에 한줄 덧붙이자면 김태리의 아역은 마치 김태리가 어릴때 찍어 놓고 크기를 기다렸다가

후반부를 찍은 느낌.

김태리가 혜원에 찰떡이라면 이 배우는 김태리의 찰떡이다!

이 아이는 커서 김태리가 될겁니다 여러분! 진짜예요!

 

 

 

 

 

 

□ 음식은 먹는데 허기져 ... :

 

일본판 리틀포레스트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계절이 듬뿍 담긴 음식이었다.

충분히 일본스러운, 그리고 그 계절 다운 음식들.

 

한국판 리틀포레스트에서는 이 부분이 아쉽다.

 

콩국수는 (생략된 과정들이) 아쉬웠고

된장국과 양배추 요리(오코노미야키), 밤조림은 뭔가 일본스러웠으며

감자빵과 꽃 파스타는 굉장히 쌩뚱맞은 느낌이었다. (어느집 찬장에나 식용꽃 한두송이 정도는 있나요?)

만족스러웠던 것은 떡볶이와 막걸리 정도.

막걸리도 전 요리 부분이 빠지니 뭔가 반쪽을 잃은 기분이기는 했다.

 

좀 더 추억과 입맛을 자극할 만한 요리가 필요했다. 허기진 도시민의 마음을 데워줄 더 익숙하고 공감가는 음식들.

두편으로 나뉜 원작과 달리 한편으로 압축하다 보니 요리에 할애할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면

메뉴 선택이라도 더 공들여 줬으면 좋았을텐데

한국판 리틀포레스트에서 요리는 '예쁜 소품'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엔 힘에 부쳤다.

 

잡지에 나올것처럼 예쁘긴 했지만 원룸도 아닌 한옥에 있을리 없는 주방 구조나

(일본판과 똑같은 구조였다. 하지만 한국판의 주방이 훨씬 예뻤음)

보일러 빵빵 트는 한국식 주택에 너무나 불필요해 보이는 난로,

(일본판에서는 이 난로가 이야기를 이끄는데 중요하게 나온다. 습도도 조절하고 빵도 굽고.)

아무리 손맛 좋은 엄마라고 해도 집에서 뚝딱 구워주기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 감자빵,

가을철 잘 익은 밤을 주워다 '굳이 만들어야 하나' 싶은데 마치 응당 만드는 것 처럼 보여준 밤조림.

원작인 일본판을 너무 의식한 느낌 때문에 살짝 거슬리기까지 했다.

 

된장국은 조금 더 진해도, 보글보글 찌개 한냄비 정도는 끓여줘도 되잖아.

잘 읽은 밤은 잘 쪄서 반을 갈라 퍼먹고

봄 나물 조물조물 무치고 막걸리엔 파전 지글지글 구워주고.

 

아 허기진다 허기져 (...)

 

 

 

 

□ 음식보다 관계에 집중 :

 

한국판 리틀포레스트는 원작보다 훨씬 쫀쫀하다. 두편을 한편으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계의 빈공간이 적다.

 

일본판을 보면서 '그래서 엄마는 어딜, 왜 간건데?'하는 의문 때문에 내내 꺼림찍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엄마의 마음을 편지로 남겨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어도 '아 그렇구나' 할 수는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원작은 기승전결이 없이 기,결이여. 둘이 썸도없이 결혼을 하다니?

 

한국판에서 처음부터 끈적한 썸이 오가길래 '아 이거 또 기승전 사랑영화군' 했는데 그 끈적한 썸이 관계를 훨씬 '납득가는 관계'로 만들더라.

 

이런 한국판의 변주가 뻔-한 한국식 로맨스 혹은 신파가 되지 않은 것은 쫀쫀한 관계의 마무리를 여백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국 세사람이 어떤 관계가 되는지, 엄마는 언제 돌아오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나레이션 없이도

지붕을 손보는 혜원의 야무진 손에서 살짝 열린 문틈으로 불어드는 바람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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