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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발길 닿는대로 떠난 경북, 맑음

#、방황의 추억

by 꽃띠 2018. 10. 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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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 벽엔 조그마한 우리나라 전도가 붙어있는데, 남한의 지역명과 유명 관광지의 이름이 쓰여있고

가본 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묘하게 여행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지도다.

8월 어느날, 원래는 원주를 가려했으나 초강력 태풍이 수도권과 강원도를 향해 오고있었고

제주도에 먼저 상륙한 태풍의 위력이 어마어마 했기 때문에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강수량이 만만치 않았다.

비오는 날엔 미술관 여행이지! 라고 큰소리 쳤지만 제주도에서는 지붕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날씨를 뚫고 떠나기엔 난 너무 쫄보였다 (...)

아쉬움에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보다가, 아랫지방으로 눈을 돌렸고 '청도'라는 지역명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도 가볼 생각을 한적 없는 도시였고, 지역명 외엔 별다른 '핫플레이스'도 표시되지 않은(내 지도상으로) 뭔가 조용한

느낌의 도시였다.

 

'청도.. 청도라.. 소싸움 유명한 그 곳 아닌가?'

 

처음 들어본 지역명은 아니었다. 몇년전에 중국 청도 여행을 준비할 때, 꼭 같이 검색되어 걸러내듯 지나치면서

많이 들어본 곳이긴 했다.

청도 날씨를 검색했다.

 

'맑다. 맑구나. 끝내주는 날씨다.'

 

원주여행에 마음을 접고 쭈구려 있던 목요일 밤, 여행지를 바꿨다.

 

'그래, 청도로 가자'

 

 

 

 

신탄진 역에서 표를 끊었다.

무궁화로 약 두시간 반. 음, 지척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차여행하기 나쁘지 않은 거리다.

운전해서 가야하는 거리였다면 피곤했겠지만 창밖보고 음악 들으며 조금 흥얼흥얼 하다보면 도착하는 거리다.

신난다.  내 기분 마치 청도 ♬

 

 

 

청도역은 신탄진역 만큼이나 작았다. 멀리서부터 반겨주는 소가 보인다.

소의 도시구나.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아침 기차를 탔는데 도착하니 점심시간 이구나. 오는길에 검색을 좀 해보니

혼자 먹을만한 음식이 마땅치 않기도 하고 시간도 애매하다. 점심 거하게 먹다보면 오후 시간도 훌쩍 지나가겠지.

다행히 김밥 맛집이 많아보였다.

처음에 찜해둔 곳은 박봉김밥이었는데 역에서 걸어가기 만만치 않은 거리다.

(충분히 걸을 수 있긴 했지만, 난 배고팠고 8월의 청도는 매우 더웠다.)

더위와 배고픔은 나를 역 바로앞 (길건너 바로) 김밥집으로 이끌었다. 다행히 맛집으로 몇몇 블로그에 소개된 집이다.

거기다 매운 김밥이라니. 매운음식 러버는 행복합니다.

 

매운김밥 한줄을 포장하고 벽을 보니 이영자씨의 싸인이 보인다.

맛집은 '정말 맛있다'고 쓰고 그냥 온집은 이름만 쓴다는 그녀의 철학을 들었기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매운맛+김밥은 실패의 확률이 적다.

김밥 한줄을 포장하고 역 앞 버스터미널로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먹을 요량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대전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넘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충남의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시골이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 하지만 청도는 낯설었다.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었다.

핸드폰 지도를 보고 아무리 걸어도 (국내 여행에서는 구글 지도보다 네이버 지도가 짱입니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정류장인데, 정류장이 없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계신 곳에 슬쩍 서봤지만 혼여족 10년차 나의 촉이 말해준다.

'여기는 버스 정류장이 아녀(..)'

 

어른들께 길을 물을땐 일단 선그라스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순박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주머니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 맞나요?"  

그 주변 아주머니 세분이 친절히 정류장을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당황스러웠다. 현지인 찬스가 아니었다면 계속 뺑뺑 돌뻔했다.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그리고 택시가 모두 이곳에 서있는다.

어찌보면 편리한 시스템인가(....)  버스 도착 예정시간 알림판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터미널 공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걸터앉아 김밥을 먹기로 했다.

아, 그 전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을 찾았는데 아무리 걸어도 편의점이 없어 당황했다.

터미널 근처 슈퍼를 겨우 찾아(코사마트 있음) 물을 두병 샀다. 편의점을 또 못찾아 못탈까봐 무서워서..

(결과적으로 두병 사길 잘했다. 와인터널앞엔 슈퍼 없음. 여러분 역앞 슈퍼에서 꼭 물 사세요..)

 

 

 

 

음... 오늘은 뭔가 당황의 연속이다. 매운김밥의 가격은 2000원. 싸다. 엄청 싸다!

그리고 그 내용물도 딱 2000원어치. (아니 어쩌면 1500원...)

ㅋㅋ 근데 청도 땡초가 맛있나, 반쯤 먹으니 실망이 감탄으로 바뀐다. 이거 맛있다. 두줄 사먹을걸 후회된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치의 맛을 내는 것이 분명함. 푸짐하지는 않지만 만족 스러운 점심이다. ୧( “̮ )୨

 

 

 

 

 

제법 매운 김밥을 먹고 물 한통을 비우고 나서도 버스가 올 기미가 안보여서 커피나 사먹을까, 하고 일어나니 버스가 왔다.

청도 와인터널행 버스. 혹시 놓치면 또 한세월을 기다려야 할것 같아 후다닥 올라탔다.

'불빛 축제 용암 온천에서 하차하세요' '와인터널을 종점입니다'

 

청도 관광 핫스팟은 이 버스가 다 다니는지 천장에 친절하게 안내가 되어있다.

나는 종점까지 가야했으므로 여유있게 앉아있었다. 시골 버스 오랜만이다. 거리상으로는 먼데 정류장이 띄엄띄엄 있어서

버스가 급행버스처럼 달린다.

 

 

원주에는 비가 퍼붓고 있다던데, 청도 날씨는 진짜 끝내줬다. 태풍에 쫄아서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면 후회할뻔 했다.

여유롭게 안내 방송을 듣다보니 청도 경찰서를 지나고 진짜 핫플레이스 소싸움 경기장도 지난다.

소싸움은 봐본적 없는데 막 지는 소는 피도 흘리고 그러려나..? 잔인할 것 같아 처음부터 볼 생각은 없었지만

또 막상 경기장 앞을 지나니 궁금해진다.

다행히(?) 소싸움 경기는 주말에만 열린단다. 금요일 여행자는 창밖으로 구경만 하고 떠납니다. 안녕~

 

 

청도 버스정류장은 감 모양이다. 귀엽다. 헤헤.

그런데 귀여운데 통풍이 안되어서 무지 덥다. 휴가기간이나 주말처럼 관광객이 몰리는 날에는 와인터널까지 들어가지 않고

송금리 정류장까지만 운행한다고,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같은 버스를 탄 할머니들이 알려주셨다.

네이버 지도 상으로 내가 탄 버스는 와인터널까지 가는데 여기서 내리라고 해서 ㅇ_ㅇ? 이런 표정으로 내렸더니

주민 할머니가 친절하게 내 손을 끌고 버스 정류장 안까지 데려가시더니

버스 오는 시간까지 알려주신다. 이 시간 이시간에 역까지 가는 버스가 오니 이 때에 맞춰서 내려오라고. 여기서 이쪽으로

쭉- 걸어 들어가면 와인터널이 금방 나온다고.

(국내 여행에는 네이버 지도보다 현지인 안내가 더 짱입니다)

 

사실 더운 날씨에 할머니 옆에 서니 훅, 노인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순간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보고싶구나.

 

감사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었다.  

 

 

버스정류장을 왼쪽에 두고 걷다보면 이런 길이 펼쳐진다.

시골 동네로 걸어 들어가는것 같은데 .. 도통 관광지가 있을것 같지 않은 길인데 ..

0.3초 길을 알려주신 할머니를 의심(?)했지만 (사실 정류장쪽에 있는 안내판에는 왼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셔서 처음부터 주춤했다.) 가는길이 예쁘니 되었다. (*˘◡˘*)

 

 

 

 

 

조금 걸으니 블로그에서 많이 본 입구가 보이고 벌써부터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입장료를 내면 주는 마스크팩과 은색박쥐. 박쥐는 소원쓰는 용. 동굴 맨 안쪽에 걸어두면 된다고.

 

 

동굴은 (당연히) 어둡고 습하다. 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와인을 주제로 꾸며놓긴 했는데 뭐랄까.. 그냥 와인 저장소 느낌.

첫 여자 대통령 탄생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왕관 심벌. 자랑스럽게 적어놨지만 왠지 초라해 보인다.

... 아직 안떼셨어요 왜...?? (°_°)

 

 

 

동굴 대충 쓱- 둘러보고 고대하던 와인 마시러.

너때문에 청도까지 왔다 ( ღ'ᴗ'ღ )

좌석은 입구쪽에 있는데 맨끝까지 구경하고 박주 달아 놓고 오니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득(...)

조용히 즐기고 싶었는데 .. 흑

 

 

 

 

그래도 꿋꿋하게 레귤러 한잔, 스페셜 한잔 거기에 치즈 안주까지 주문했다.

보통 모듬치즈(5천원) 안주를 먹던데 슬라이스 치즈랑 크래커 한봉지? 다른 치즈 조금 뭐 이렇게 있는 퀄리티가 너무 안좋아

보여서 차라리 8천원짜리 치즈를 삼. 대만족. 치즈 맛있당.

여러맛 치즈가 있었는데 버섯만은 완전 버섯치즈스프맛. 파맛 치즈는 도전 못하고 집으로 가져옴. (❛ө❛)

 

와인은 살짝 떫었지만 그래도 맛있더라 ( ღ'ᴗ'ღ )

눅눅한 동굴에서 달달한 와인과 치즈를 먹는맛. 크. 사실 분위기가 다했다.

시끌시끌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좀 신경쓰이긴 했지만 좌석이 많아서 바글바글한 느낌은 아니어서 다행.

그래두 지나가다가 내가 딱해 보였는지 "사진 찍어줄까?" 물었다. 착한분들 헤헤. 좋은 여행 하고 가세요.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와인터널에서 나와서 동네구경. 소담스런 돌담도 정돈안된 감나무도 예쁘다.

관광지보다 그냥 시골동네 느낌이 좋다. 풍경이 그냥 그 자체로 그림. 바닷가나 관광지는 성수기지만

이 동네는 참 한적하다. 그래서 더 좋아. (ෆ`꒳´ෆ)

혼자 히죽거리며 동네 구경을 하다가 차시간에 좀 일찍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바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한 10분 일찍 왔는데 .. 20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대전은 버스가 어디쯤 오는지 알 수 있는 판이 있는데 여긴뭐 눈만 멀뚱멀뚱 뜨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손으로 적어 놓은 '버스 도착시간'과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며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혹시 버스 벌써 끊긴거 아냐...?'

30분쯤 기다리다보니 살짝 걱정이 됐지만, 곧 '에라 모르겠다~ 오늘 안에는 오겠지. 어두운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택시를 부르면 온다던데(아까 만난 할머니가 가르쳐 주심)

택시정류장부터 버스타고 달려온 길이 제법 가깝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가 오기전에 버스가 먼저 올 것 같아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노숙이야 하겠어~ ?? ◡( ๑❛ᴗ❛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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