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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보고 쓰다

by 꽃띠 2018. 5.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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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졸업했으나 하고 싶은게 없다.

눈이 떠지면 일어나 밥을 먹고, 만화책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햇빛에 눈이 부시면 커튼을 치고, 더우면 에어컨을 켠다.

밥을 먹을 때 외에는 도통 이불밖으로 나오지 않는 '잉여생활'

주인공 다마코의 일상이지만,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다.

특히 '하고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다마코는 고향집에 내려와 아빠와 한집 생활 중인데,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아빠와 달리 다마코는 구직 활동도 뒷전이면서 적극적으로 놀지도 않는다.

온종일 이불속에서 만화책과 티비로만 눈길을 옮길 뿐.

영화 제목인 '모라토리움기'는 인간이 성장하고서도 아직 사회적 의무 수행을 유예하는 기간 혹은 그 유예기간에

머무르려 하는 심리상태라고 한다.

성적과 학교 간판, 취업,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 우리는 나이에 맞춰 모두가 똑같은 관문을 통과할 것을 강요받으며 산다.

하물며 식물도 저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데, 누가 정해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나잇값'을 모두가 똑같이 요구받고 있다.

때로는 '이 나이가 되면 이런 일을 해야한다'-는 무게감을 모두가 똑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난 아직 준비운동 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바닷물에 던져진 기분.

사회적으로 '성인'이라고 인정받는, 그러니까 음주와 흡연이 가능하고 오롯이 한명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만하는 나이에도 아직 '고치'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모라토리움기'라는 용어까지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일 거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하고싶지 않아도 꾸역꾸역 면접 준비를 하고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나잇값'이라는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

쉽지 않으니 흥미가 더 떨어진다. 흥미가 없으니 도통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이쯤되면 다마코가 위축되고 자신없고 햇빛을 피해 사는 잉여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녀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아무일도 하지 않기'를 이행하는 중이다.

이력서를 넣는 활동도 하고싶은 정도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하고 싶은 정도만 한다.

누가 강요한다고 더 움직이거나 남의 눈치가 보여 무언가를 더 하는 '척'하지 않는다.

시큰둥하게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다마코의 표정이 말해준다.

"나는 노는게 부끄럽지 않아"

 

 

 

물론 그 당당함이 살짝 구겨질 때도 있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난 친구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물론, 그 친구도 날 반가운'채'만 하는 느낌이다.

후즐근한 옷으로 만난 친구와 의미없는 안부만 나누고 더 의미없는 '나중에 밥 한번' 인사를 하고 돌아 오는길,

'모라토리움기'의 가장 우중충한 순간은 이럴때가 아닌가 싶다.

남들은 앞으로 쭉쭉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하염없이 제자리에 있는 기분.

하지만 우리는 안다. 모라토리움기가 아니어도, 열심히 패달을 밟고 또 밟아도

이렇게 무너지는 순간은 온다.

온 힘을 다해 패달을 밟았는데 돌아보면 출발점이 코 앞인 기분. 분명 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가 어느덧 저 앞에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을.

 

 

그러니 인생의 '모라토리움기'에 있는 모든 다마코들이여, 힘을 내시라.

힘껏 헤엄치지 않으면 어떠하리, 어짜피 인생의 바다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긴 시간 파도와 싸워야 할텐데

지금은 온 몸에 힘을 빼고 기꺼이 둥둥 바다를 떠 다니자.

출발이 좋은 사람도, 막판 스퍼트가 좋은 사람도 혹은 파도에 계속 몸을 맡기는 사람도

제 나름 순항하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어짜피 내던져진 바다인데, 우리 제발 내 속도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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