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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떠나보내는 이에게

#、보고 쓰다

by 꽃띠 2013. 6. 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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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사이 천천히 물들어 가듯 오기도 하고 불이 번쩍 하며 한순간 화르륵 하기도 하지만

속도의 차이일뿐 누구도 사랑을 예상하고 시작하지는 못하리라.

불현듯 찾아온 사랑은 반가울 새도 없이 그 사람에게 빠지게 만들듯, 불현듯 찾아온 이별은 아플새도 없나보다.

 

사랑은 한때, 사랑과 이별은 한패-라는 노랫말이 있다. (리쌍.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그렇다. 사랑은 한때. 아무리 온 사랑을 쏟아도, 내 마음을 다 바쳐도 불현듯 돌아선 상대의 마음에는 닿지 못한다.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았을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울고불고 욕도 해보고 매달려도 보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며 저주도 해보고 확 죽어버린다는 협박도 해보고 할 수있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를 잡겠는가.

아니면 덤덤히. 응, 그래 잘가. 라고 웃어 주겠는가.

 

이별은 아프다. 마음이 저리고, 심장이 먹먹하고, 머리가 핑 돈다.

그러나 이 모든건, 이별을 실감하고 나서리라.

 

 

 

 

 

 

 

 

결혼 5년차 부부. 여자의 출장길을 배웅해 주던 남자는 불현듯 이별 통보를 받는다.

'오늘 날씨 좋네'라는듯 덤덤한 말투로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는 여자.

그보다 더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 들이는 남자. 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이별하기로 한다.

 

 

 

 

 

 

 

 

지독하게 비가 쏟아지는 날. 여자는 짐을 싼다. 그동안 함께했던 공간에서 자신만의 짐을 추리는 여자.

그리고 이상황에 TV를 보고있던 이 남자 문득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하나하나 포장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아끼는 그릇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곱게 포장해서 짐 싸는걸 돕는 그의 표정은 평온하다.

어떠한 분노도 없다. 그릇이 깨지기라도 할까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그는 , 어쩌면 언제 터져나올 지 모르는 마음을 꽁꽁 싸매듯 그릇을 포장하는지도 모른다.

아, 저 그릇을 다 던져 깨버리는건 아닐까, 이쯤하면 화낼 때도 됐는데….

관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짐을 정리하면서 곳곳에서 추억이 쏟아진다.

그와 함께한 시간, 여자가 받았던 사랑의 증거들이 툭툭, 그와 그녀의 마음을 친다.

 

하지만 여전히 그도, 그녀도 조용하다. 마치 날씨 좋은날 사이좋게 대청소를 하고 있는 부부처럼.

 

 

 

 

 

 

 

 

 

사랑은 변한다. 그녀의 사랑도 그랬다.

새로운 사랑에게 떠나는 그녀는 설레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양심때문이었는지 미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물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이별을 고한 그녀는 게으르게 짐을 싼다.

책 하나 정리하고 담배한대 피고, 사진 한장 넣고 담배한대 피고.

 

 

 

 

 

 

자신의 짐을 싸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사랑했냐고- 묻고싶지는 않았을까.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묻고 싶을때가 있다.

나를, 사랑하긴 하냐고.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해서가 아니다. 화를내거나 나를 쳐다보지 않거나, 안아주지 않을 때가 아니다.

'나에대해 아무런 욕심이 없구나' 라는 느낌이 들 때. 묻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게 맞냐고.

 

 

하지만, 그렇게 묻기에는 그의 미소가 목소리가 너무도 따뜻하다.

그가 타주는 커피에서 여전한 사랑이 느껴진다.

염치없지만, 그래서 더 숨이 막혔으리라.

 

 

 

 

 

-왜 나한테 화내지 않는거지?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건 없잖아. 왠지 그냥 자기 마음이 정해진 이상 어떻게 해도 바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분명히 나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이렇게 된거고.

 

 

오호라, 이남자. 보통이 아니다. 이건 착한남자 정도가 아니다. 독한남자지.

다른 남자한테 떠나는 여자에게, 화낸다고 달라질게 없으니 화내지 않고 보내주겠다라고 답하는 남자.

 

그녀는 망설였을 것이다. 문득문득 쏟아지는 과거의 추억 때문에, 혼자 남을 이 남자 때문에 마음이 아려서

막상 떠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깜깜한 숲에서 길 잃은 어린양처럼 무섭고, 슬프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이런 얘길 들은 이상,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를 떠나야 한다.

이제와서 '잡아줘'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계속 비가 내린다. 그 빗소리는 지독하게 두 사람을 따라다닌다.

방으로, 욕실로, 지하실로...

관객의 귀가 빗소리에 익숙해 질 때즈음, 맑게 개인 어느 날 집 풍경을 짧게 보여준 후 다시 무섭게 비가 쏟아지는 현실로 돌아온다.

시작부터 끝 까지 빗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덕분에 주인공들의 속삭이는 듯한 대화부터, 조용한 한숨까지 귀기울이게 된다.

타닥타닥.

 

 

 

 

 

 

 

 

 

영화는,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온 고양이에게 여자가 '괜찮아, 다 괜찮아질꺼야'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끝이난다.

고양이에게 하는건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건지 모르겠는 말.

 

 

 

많은 사랑을 받고도,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자가 이기적인걸까.

떠나는 여자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보내주는 남자가 더 이기적인걸까.

 

정말, 다 괜찮아 질까?

지금 당장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사람도, 그래서 안될꺼라는걸 알면서 아프게 부여잡고 있는 사랑도.

놔주면, 없던일이 되는걸까.

함께 있자니 아프고, 떠나자니 두려운 사람이 있다.

 

임수정이 낮게 속삭이는 '괜찮아, 다 괜찮아 질꺼야'라는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것 같아서

앤딩크레딧이 한참 올라갈 때 까지 멍하게 있었다.

 

지금 사랑으로 아픈 이들이여, 모두

괜찮아, 괜찮아 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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