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성실할 수 밖에 없는 나라의 앨리스

#、보고 쓰다

by 꽃띠 2019. 10. 13. 01:29

본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한국) 주연:이정현

 


여기 성실한, 매우 성실한 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가 성실한 이유는, 성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순수를 넘어 순진하고, 가진건 고등학교 때 딴 자격증 14개가 전부인 그녀.

주판알 제법 잘 튕길 땐 세상이 만만해 보였는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일자리는 컴퓨터가 장악해 버렸고,

여기 이 순수한 여자는 이름없는 작은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자신이 가진 자격증과 큰 꿈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취직도 되었고, 거기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

여자는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결혼하고, 애기낳고, 집 살 꿈에 부풀어 행복했었다.

 

그래, 행복했었다.

불행이 하나, 둘씩만 올 때 까지만 해도.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청력이 좋지 않던 그의 남편은 결혼 즈음, 청력이 급격히 나빠져 수술을 해야했다.

무려 2천만원이나 드는 수술을.

그만큼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다.

 

그래, 이제 다시 성실히 생활하면 돼. 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남편은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청력도 잃고 손가락도 잃은 그녀의 남편은 좌절하고,

여자는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남편의 꿈이었던 '내 집 마련'을 결심한다.

 

여자는 닥치는대로 일 한다. 식당 설거지, 아파트 계단 청소, 신문배달, 숙박 업소 청소까지.

그렇게 성실하게 한푼 두푼 모으기를 9년째. 그녀는 드디어!

 

은행 대출을 받는다.

맹하게 웃으며 그녀가 하는 말.

 

"제가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집값은 더 꾸준히 오르더라구요."

 

 

 


 

 

성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미덕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 우리는 "성실하게 살자"는 말을 주문처럼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누구를 위해, 왜 우리가 성실해야 하는가?

'나를 위해'라고 하기엔 성실은 너무나 괴롭다.
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게으르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몸이 아파도 이게 내 게으름 때문은 아닌지 반성해야 하며 편하고 싶은 마음을 늘 경계하고 살아야 하는 이 고단함이 정말 나를 위한거라고?

 

물론, 나도 성실이 인간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성실한 사람이 좋다. 요행을 바라는 사람은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성실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이 소박한 꿈을 위해 '성실하게' 한발 한발 전진해 갈 때 행복은 기를 쓰고 뛰어 달아났듯이 인생이란 그렇다. 행복과의 거리는 성실한 만큼 좁혀지지 않는다.


슬프지만, 현실은 냉혹한거니까.

 

정말 슬픈것은 성실한 사람이 바라는건 뭐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거다.
소박한 꿈이 슬프다. 불안해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의식주. 안정적으로 내 옆에 있어줄 사람. 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시간 같은 것들.
꿈이 너무 소박하면 그 화살은 왜인지 내 스스로에게 오게 된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차라리 자격증 같은게 있으면 좋을텐데.
60만큼 성실해서 60만큼 행복을 드림.
이런것.

 

 

 

이 영화에서 짜증나는 포인트가 몇가지 있는데,
1. 한순간의 멍청함이 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를만한 잘못인가
2. 자신의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이렇게 누군가를 이용하고, 약자를 괴롭혀도 되는 것인가
3. 저런 태도로 상담일을 한다고????????????????
였다.

3번은 내가 직접 겪지 않았으니 넘긴다 치지만,

슬프게도 1번과 2번은 매우 현실적인 내용이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사실 여주인공은 '성실하다'기보다 어딘가 매우, 많이 부족해 보인다.
사회가 그녀를 성실할 수 밖에 없게 만든것도 있지만 어찌보면 그녀가 가진 것은 그냥 '성실' 하나 뿐인것도 같다.

힘든 상황에서도 뇌맑은, 변수는 생각하지도 않고 경주마처럼 달려드는 그녀가 답답할 때도 많다.
위급한 순간에 징징 울고만 있는 나약함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그 맹함이- 아, 정말이지 분통터진다!

 

하지만, 그녀의 지능이 20정도 더 높았던들, 자격증이 3개쯤 더 있었던들, 그녀의 삶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으리라.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그 웃음이 너무너무 싫었지만 그 말도 안되는 잔인함과 뒤섞이고 나니 뭐 딱 적당한것도 같았다.


나는 '생활의 달인'이 그렇게 슬프더라.
수십년을 같은일을 하다 보니 몸에 익어 달인이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달인이 되어야지' 생각했을까. 그냥 살아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쓱쓱 하다보니 눈 감고도 하는 달인이 되었겠지.

 

그녀는 내가 영화에서 본 많은 살인자 중에 가장 뛰어난 '생활형 살인자'다. 몸에 익은 기술로 한명씩 처리할 때, 그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 너무도 당연하게 죽는 장면이라 빨리 끝냄' 이라는 안내 자막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생활형 킬러, 랄까.


갑갑한 상황에서 가진건 성실 뿐이라 성실하게 살 수 밖에 없던 앨리스.

영화를 보는 내내 갑갑했지만, 이 글을 쓰며 영화를 다시 곱씹어 보니 오래 갑갑할 틈을 주지 않는 시원한 영화이기도 했다.

남편이 끝내 죽지 않은것도, 그녀가 끝끝내 남편과 함께 떠난 것도 유의미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이해 받지 못할 지라도, 우리의 삶에는 단 하나쯤 절대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존재할테니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