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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르누아르의 여인展

#、느끼고 쓰다

by 꽃띠 2017. 3.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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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수교 130주년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 르누아르의 여인 (2016.12.16~2017.3.26)

 

 

무릇, 예술에는 시대상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르누아르는 그다지 매력있는 예술가는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대의 아픔이나 개인의 고뇌를 담아온 예술가를 좋아.... 하는데

사실 예.알.못이므로 작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걸로. 껄껄.

 

하지만, 인상주의 화풍에는 제법 관심이 있어서 몇년전 르누아르전이 열렸을 때 보지 못한것이 오래도록 아쉬웠었다.

그리고 몇년만에, 다시 르누아르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뭐 그다지 열광(?)하는 작가는 아닌지라, 일부러 시간을 내지는 않고 있다가 마침 전시가 끝나기 전에 주변에서 약속이 생겨 겸사겸사 르누아르를 보기위해 나섰다.

 

(사실 전날 숙취..때문에 갈까말까 고민을 좀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녀오길 잘한듯. 허허)

 

 

 

포토존에 설치되어 있던 르누아르의 모습.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어린 여자아이부터 소녀, 여성 노동자, 숙녀, 부인까지 다양한 여성을 그려온 그가 남긴 여성 인물화는 2000여점에 달하는데,

이는 그의 작품 절반에 이르는 양이라고 한다.

 

그가 왜 이렇게 '여성'이라는 주제를 좋아했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좋아했던 - 꿈꿨던 이상향 이미지에 확실이 여성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알겠더라.

 

행복, 포근함, 모성, 자애로움.

 

그의 그림에는 일관되게 품이 넉넉한 여성의 이미지가 흐른다.

 

르누아르가 전문 모델을 싫어했다는 것도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여성상이 치명적 관능미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과 모성애에 천착했다던 그가 왜 막상 본인의 부인을 모델로 삼은 그림은 얼마 없는지-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있다보면 그가 가족과 모성애를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는지가 느껴진다.

 

평화롭고 빛 가득한 자연에서 아무 고민없는 소녀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은 그가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말년에 파키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여인의 투명한 피부, 발그레한 볼의 표현만큼은 고집스럽게 지켜온 르누아르.

 

 

그의 그림속 여성은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데,

몸매를 다 드러내고 있는 누드화속 여성들 조차 퇴폐적이거나 야릇한 느낌이 전혀 없다.

헐벗은 그녀들 마저도 풀숲의 소녀들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실제로, 르누아르가 누드화를 발표했을 당시, 지나치게 풍만한 몸매 때문에 혹평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가 혹평을 받을 정도로 강조한 것은 여성의 가슴이 아니라 하체였다.

좋지않은 평판에도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몸매를 표현하는 것을 바꾸지 않았는데,

팔, 배에 두덕두덕 붙은 살, 비현실적으로 풍만한 허벅지는 요즘 미인의 기준에 걸맞은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마치 비너스를 모습과도 같은 그의 그림속 여성들은 르누아르가 '이상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여성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현실적이지 않은 몸매를 통해 '이상향'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빈약한 가슴, 기이할 정도로 풍만한 허벅지.

누구의 눈에는 균형잡히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몸매일지 몰라도, 나는 그녀들의 화사함과 건강함이 좋았다.

마른몸 예찬보다 훨씬 좋았다-는 느낌은 아마 사심이 가득 들어서겠지. 허허.  

 

예술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정답은 없다.

르누아르전을 보고나니, 그의 말처럼, 영혼을 씻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겠더라.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고민없이 노니는 소녀들의 모습에서,

아이의 발그레한 볼에서,

건강한 여인들의 몸에서,

밝은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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